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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쪽 여행지 (지미봉, 다랑쉬오름, 편린, 종달리)

by nyammi9 2026. 4. 28.

제주에 위치한 지미봉
제주에 위치한 지미봉

 

이전 글은 서쪽 여행지였는데요, 이번글은 동쪽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주 동쪽을 한동안 '대충 아는 곳'으로 여겼습니다. 성산일출봉 찍고, 우도 들렀다 나오면 끝이라는 식으로요. 그런데 직접 지미봉을 올라 숨이 턱까지 차오른 그 순간, 제주 동쪽이 '깊이를 보는 곳'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 글은 5월, 6월 제주 동쪽 여행을 계획 중인 분들을 위한 실제 경험 기록입니다.

1. 지미봉, 낮아 보여서 더 무서운 오름

지미봉을 처음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낮아 보이는데 금방 올라가겠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오르기 시작한 지 10분 만에 그 생각을 완전히 철회했습니다.

지미봉은 해발 165.8m에 불과하지만, 등반 경사도가 상당히 가파릅니다. 여기서 등반 경사도란 수평 이동 거리 대비 수직 상승 높이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얼마나 급하게 치솟느냐'를 나타냅니다. 지미봉은 이 수치가 일반적인 제주 오름에 비해 현저히 높아서, 짧은 거리에서 급격하게 고도를 올려야 합니다. 허벅지가 비명을 질렀고, 두 번쯤 멈춰 서서 숨을 골랐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오르는 내내 시야가 점점 열리면서, 종달리의 낮은 지붕들 너머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거든요. 정상에 서는 순간,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파노라마 뷰가 펼쳐집니다. 그 경관은 흘린 땀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지미봉은 제주 올레 21코스의 종점이기도 합니다. 올레길이란 제주도의 해안과 마을을 잇는 장거리 도보 코스로, 제주올레재단이 조성한 총 27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출처: 제주올레). 오름 자체만 오르는 것도 좋지만, 하산 후 종달리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면 긴장된 다리 근육을 풀기에 더할 나위 없습니다.

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슬리퍼나 운동화가 아닌 신발로 오르시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등산화 또는 밑창이 단단한 운동화가 필수입니다. 노약자나 무릎 관절이 좋지 않으신 분들께는 권하기 어려운 '매운맛' 오름이라는 점, 미리 알고 가시길 바랍니다.

2. 다랑쉬오름,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의 이면

다랑쉬오름에 대해서는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름"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저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곳을 처음 방문하는 분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어서, 먼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등반로는 잘 정비되어 있지만, 그것이 '쉽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랑쉬오름의 비고(比高)는 약 227m입니다. 비고란 오름 기저부에서 정상까지의 실제 높이 차이를 의미하며, 주변 지형보다 얼마나 솟아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제주의 많은 오름 중에서도 비고가 높은 편에 속해, 체력 소모가 상당합니다. 능선을 따라 분화구를 한 바퀴 도는 코스까지 욕심을 내면 왕복 1시간 30분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래도 정상에서 마주하는 분화구의 깊이감은 다른 어떤 오름과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서 봤을 때, 능선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분화구 내부를 보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쳐 몸이 휘청거렸는데, 그 순간에도 발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제주도의 오름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기생화산(寄生火山)입니다. 기생화산이란 주화산체인 한라산의 측면에서 분출하여 형성된 소규모 화산체를 의미합니다. 제주도에는 현재 약 368개의 오름이 분포하고 있으며(출처: 제주특별자치도), 그중 다랑쉬오름은 형태 보존이 가장 완벽한 오름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다랑쉬오름 방문 시 꼭 챙겨야 할 것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바람막이 재킷: 계절과 상관없이 정상부 바람이 매서워 체감 온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 등산화 또는 그립감이 좋은 운동화: 정상 능선은 흙길이라 일반 운동화로는 미끄럽습니다
  • 충분한 물: 그늘이 거의 없어 여름철에는 탈수 위험이 있습니다
  • 이른 아침 출발: 유명세만큼 방문객이 많아, 오전 일찍 가야 한적한 능선을 걸을 수 있습니다

3. 정상 후 들르는 카페 편린, 감성과 현실 사이

오름을 두 개 연달아 오르고 나서 카페를 찾았을 때, 편린은 딱 제가 원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구좌읍 한동리의 좁은 마을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타나는, 제주 전통 돌담 구옥(舊屋)을 개조한 카페입니다. 구옥이란 오래된 전통 가옥을 뜻하며, 이곳은 원래 건물의 골조와 돌담을 최대한 살리면서 내부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입니다.

거친 오름의 바람을 뒤로하고 돌담 안쪽 카페에 앉아 따뜻한 필터 커피를 한 모금 머금었을 때, 그제야 몸 안으로 제주의 평온함이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낮은 돌담과 파란 하늘의 조합은, 어떤 유명 리조트에서도 재현하기 어려운 제주만의 공간감이었습니다.

다만 솔직하게 비판하자면, 이곳은 '느림'을 표방하면서도 '기다림'은 상당히 혹독합니다. 공간이 협소한 편이라 주말 오후에는 대기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조용한 분위기를 지향하는 공간 특성상, 어린아이와 함께 방문하거나 소란스럽게 오래 머물기엔 다소 눈치가 보일 수 있습니다. 의자가 불편하다는 점도 기억해 두면 좋습니다. 저처럼 오름 후 근육이 피로한 상태라면 30분 이상 앉아 있기가 쉽지 않더군요.

편린의 위치는 마을 안쪽 좁은 길이라 차량 진입 시 주의가 필요합니다. 운전이 서투신 분이라면 인근 공터에 미리 주차하고 걸어 들어가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합니다. 공간의 감도는 제주 동쪽 카페 중 손에 꼽을 만큼 높지만, 편안하게 수다를 떨며 오래 머물 목적이라면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는 것도 현실적인 조언입니다.

4. 종달리 해안도로, 동선의 완성

지미봉과 다랑쉬오름, 편린까지 다녀왔다면, 마지막 동선으로 종달리 해안도로를 추천합니다. 이곳은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마무리하는 '디컴프레션(decompression)' 구간으로 활용하기에 최적입니다. 디컴프레션이란 심리적 긴장과 신체적 피로를 서서히 해소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여행에서는 강렬한 체험 이후 여유로운 동선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종달리는 제주 올레 1코스의 출발지이기도 한 작은 어촌 마을입니다. 마을 곳곳에 소박한 카페와 식당이 들어서 있고,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하면 성산일출봉이 수평선 위에 둥실 떠오르는 장면을 연속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5월과 6월에 이 도로를 달리면 바람이 짭조름하고, 햇빛이 바다 위에서 부서지는 방식이 다른 계절과는 전혀 다릅니다.

제주의 5월, 6월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날씨가 좋아서만이 아닙니다. 성수기인 7, 8월에 비해 관광객 수가 적어 오름과 해안도로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고, 기온도 지나치게 덥지 않아 야외 활동에 적합합니다. 특히 제주도의 연간 강수 패턴을 보면 6월 말부터 장마가 시작되므로, 6월 중순 이전에 방문하는 것이 쾌청한 날씨를 만날 확률이 높습니다.

제주 동쪽 코스는 '압도적인 뷰'와 '고즈넉한 감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참 어렵습니다. 지미봉과 다랑쉬오름이 체력을 요구하는 만큼, 편린과 종달리 해안도로가 그 균형을 잡아줍니다. 극명한 대비를 하루 안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제가 제주 동쪽 코스를 계속해서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처음 방문이라면 지미봉에서 시작해 다랑쉬오름, 편린, 종달리 해안도로 순서로 움직이는 동선이 가장 자연스럽고 만족도가 높을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RgytJlhZ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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