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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로 떠나는 4번째 이야기 보길도 여행 (동천석실, 공룡알해변, 황칠나무)

by nyammi9 2026. 2. 27.

해안가 절벽
해안가 절벽

 

보길도를 검색하면 다들 세연정과 낙서재만 이야기하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정원 하나 보러 배 타고 가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부용동 원림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정원 뒤편 절벽 위 동천석실에서 내려다본 풍경, 공룡알처럼 둥근돌이 해변을 가득 채운 보옥해변, 그리고 마을 한복판에서 200년을 버틴 황칠나무까지. 보길도는 유명한 곳 말고도 숨은 명소가 제법 많은 섬이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직접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보길도에서 꼭 들러야 할 세 곳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동천석실, 절벽 위 신선의 정자

세연정을 보고 나서 "이게 끝인가?" 싶으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낙서재 맞은편 산길 입구에 '동천석실 50m'라는 이정표가 보이더라고요. 50m라고 적혀 있어서 금방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15분 정도 가파른 숲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도착한 동천석실은 격자봉 중턱 절벽에 위태롭게 앉은 한 칸짜리 정자였습니다.

여기서 '동천석실(洞天石室)'이란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이 사는 하늘 아래 바위 방'을 의미합니다. 고산 윤선도가 이곳을 선계(仙界), 즉 속세를 벗어난 신선의 세계로 여겼기 때문에 붙인 이름입니다. 정자 앞 차바위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면 낙서재와 곡수당이 손바닥만 하게 보이고, 멀리 다도해의 섬들이 안갯속에 떠 있습니다. 이 풍경을 보는 순간 고산 선생이 왜 여기서 차를 마시며 세상을 내려다봤는지 단번에 이해가 갔습니다.

정자 옆에는 용두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낙서재에서 여기까지 도르래로 음식을 날랐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실제로 가능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만큼 이곳이 고산에게 특별한 공간이었다는 뜻이겠죠. 솔직히 이곳은 올라가는 길이 힘들어서 많은 분들이 포기하는데, 저는 오히려 그 덕분에 조용히 풍경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보길도에 오셨다면 세연정만 보고 내려가지 마시고, 꼭 동천석실까지 올라가 보시길 바랍니다.

2. 보옥공룡알해변, 파도가 빚은 둥근돌의 향연

동천석실에서 내려와 보길도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보옥공룡알해변이 나옵니다.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여기 정말 공룡알 있나?" 싶었는데, 해변으로 내려가는 순간 입이 벌어졌습니다. 사람 머리만 한 돌들이 해변을 가득 채우고 있더라고요. 일반 몽돌해변처럼 발이 푹푹 빠지는 게 아니라, 돌 위를 징검다리 건너듯 걸어야 합니다.

이 돌들은 해식작용(海蝕作用)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여기서 해식작용이란 파도와 바닷물이 오랜 시간 바위를 깎고 씻어 매끄럽게 만드는 자연 현상을 말합니다. 보통 수천 년에서 수만 년이 걸리는 과정이죠. 파도가 밀려왔다 나갈 때마다 이 거대한 돌들이 서로 부딪히며 '우르르, 쿵쿵' 소리를 냅니다. 이 소리가 정말 압도적이어서,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해변 뒤로는 보죽산(일명 뾰족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습니다. 이 산은 보길도의 랜드마크처럼 여겨지는데, 해발 300m 남짓이지만 정상까지 올라가면 보길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서 올라가지 못했지만, 다음에 보길도를 다시 찾는다면 꼭 올라가 보고 싶습니다. 공룡알해변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 정말 좋은 곳입니다. 넓은 해변에 저 혼자 서 있으니 마치 쥐라기 시대에 불시착한 것 같은 신비로운 기분이 들더라고요.

3. 정자리 황칡나무, 왕실의 황금빛 도료

보길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로 정자리 황칠나무를 찾았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동네 어르신께 여쭤보니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시더라고요. 집 마당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대숲을 지나니 천연기념물 제479호로 지정된 황칠나무가 나타났습니다. 수령이 약 200년이 넘은 이 나무는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 마치 거대한 우산처럼 보였습니다.

황칠나무는 두릅나무 종에 속하는 나무로, 줄기에서 채취한 수액을 황칠(黃漆)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황칠이란 황금빛을 띠는 천연 도료로, 조선시대에는 왕실 가구나 불상에만 사용할 수 있었던 귀한 재료입니다. 일반 옻칠보다 광택이 뛰어나고 색이 변하지 않아 '천년을 가는 도료'로도 불렸습니다(출처: 산림청).

보길도와 완도 일대는 과거 황칠의 주산지였습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부분의 황칠나무가 사라졌고, 지금은 이렇게 몇 그루만 천연기념물로 남아 있습니다. 정자리 황칠나무는 마을의 수호신처럼 자리를 지켜온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나무 아래 잠시 앉아 보길도 여행을 되돌아봤습니다. 화려한 볼거리는 아니지만, 긴 세월을 버텨온 나무의 묵직한 존재감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더라고요.

보길도는 세연정만 보고 돌아가기엔 아쉬운 섬입니다. 절벽 위 동천석실에서 느낀 신선의 시선, 공룡알해변에서 들은 파도의 오케스트라, 황칠나무 아래서 마주한 세월의 무게. 이 세 곳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보길도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자연과 역사가 깊게 스며든 인생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남도를 여행하실 계획이 있으시다면, 보길도에 하루 정도 여유를 두고 천천히 둘러보시길 추천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걸으며 섬의 숨결을 느껴보세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dzFalE11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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