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간 20만 명 이상이 찾는다는 통영 사량도, 저는 솔직히 그 숫자가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가보니 틀렸습니다. 사량도와 울산 대왕암공원, 이 두 곳은 모두 '바다 여행'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이지만, 실제로 발을 딛는 순간 여행자의 몸이 요구하는 것이 완전히 다릅니다. 어느 쪽이 나에게 맞는지 모르고 떠나면 낭패입니다.
1. 지리망산 칼바위 능선, 남해가 발아래 깔리는 순간
사량도는 통영 가오치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가는 섬입니다.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까지는 "어, 제법 평화롭네"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리망산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면 그 생각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 코스의 핵심은 리지 트레일(Ridge Trail)입니다. 리지 트레일이란 산의 능선을 따라 걷는 등산 루트를 말하는데, 사량도의 경우 암릉(岩稜), 즉 바위로 이루어진 날카로운 능선이 대부분이라 일반 흙길 산행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가 직접 올라가 봤는데, 경사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 구간에서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이라면 이 구간에서 멘털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리망산 정상에서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는 두 개의 출렁다리를 포함합니다. 여기서 출렁다리를 건너는 순간,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건 저만의 경험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 긴장감이 사라지고 나서 마주하는 한려수도(閑麗水道)의 파노라마는 압도적입니다. 한려수도란 경남 거제에서 전남 여수에 이르는 해상 구간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잔잔한 남해 위에 점점이 박혀 있는 경관을 뜻합니다. 그 풍경을 칼바위 능선 위에서 내려다보는 경험은, 제 인생 등산 중 가장 강렬한 보상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량도가 '섬 여행지'로 소개될 때는 이 험난함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 점이 가장 아쉽습니다. 이건 하드코어 트레킹 코스입니다. 하산 후 여객선 터미널 근처에서 먹은 멍게비빔밥의 쌉싸름한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만, 그 맛을 즐기려면 먼저 그 땀을 흘려야 합니다.
사량도 방문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접지력이 좋은 등산화 필수 (일반 운동화로는 바위 구간에서 매우 위험합니다)
- 장갑 지참 필수 (밧줄과 철계단을 잡고 오르는 구간이 많습니다)
- 통영 가오치여객선터미널에 주차 후 탑승, 신분증 지참 필수
- 기상 상태 사전 확인 필수 (기상 악화 시 여객선 결항으로 일정 전체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 섬 내 순환버스 배차 간격이 넓으므로, 자차 선적 여부를 미리 결정해야 합니다
사량도 여객선 운항 정보는 통영시청 공식 홈페이지나 가오치여객선터미널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국립공원공단은 사량도 옥녀봉 코스를 포함한 탐방 안전 정보를 공개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공원공단).
2. 대왕암공원 해안 산책로, 편안함의 이면에 숨은 진짜 매력
울산 동구에 위치한 대왕암공원은 사량도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결의 여행지입니다. 이곳의 진입로는 수령 100년을 훌쩍 넘긴 해송(海松) 1만여 그루가 만들어내는 숲길로 시작됩니다. 숲 그늘 아래로 데크 산책로가 이어지는 구조라, 무릎이나 발목에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왕암공원은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대왕교로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대왕교 자체보다 그 다리 위에서 발밑으로 하얗게 부서지는 동해 파도가 주는 청량감이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현무암과 화강암이 수천 년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기암괴석(奇巖怪石) 군락이 대왕암의 진짜 얼굴입니다. 기암괴석이란 기이하고 독특한 형태를 가진 바위들의 집합을 뜻하는데, 대왕암의 그것은 규모와 조형미 면에서 국내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최근 생긴 출렁다리 때문에 주말 인파가 몰려, 다리 위에서는 앞사람 뒤통수만 보며 걸어야 했습니다. 출렁다리 마케팅이 오히려 공원 본연의 고즈넉함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인파에서 벗어나 해안 산책로를 따라 슬도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 그 번잡함이 거짓말처럼 사라집니다. 이 구간이야말로 대왕암공원의 진짜 숨겨진 동선입니다.
6월에 방문하면 해송 숲길 옆으로 수국이 피어있는 구간도 만날 수 있습니다. 수국은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꽃 색깔이 달라지는 pH 지시 식물로 알려져 있는데, pH가 낮을수록(산성) 파란색, pH가 높을수록(알칼리성) 붉은색이나 보라색을 띱니다. 대왕암공원의 수국이 유독 선명한 파란빛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주차의 경우, 공영주차장 규모는 크지만 주말 낮에는 진입로가 사실상 마비됩니다. 오전 일찍 방문하거나 평일을 택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울산시 공식 관광 포털에서는 대왕암공원 주변 주차장 실시간 현황과 편의시설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출처: 울산광역시 문화관광).
두 여행지를 모두 다녀온 지금, 결론은 단순합니다. 바다는 가만히 있지만, 그 바다를 품은 땅의 성격에 따라 여행자의 호흡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몸을 던져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고 싶다면 사량도로, 편안하게 푸른 바다의 기운을 수혈받고 싶다면 대왕암공원으로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단, 사량도를 선택하셨다면 등산화와 장갑은 절대 빠뜨리지 마십시오. 그 조건 하나가 여행 전체의 안전을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