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장미 하나 보자고 세 곳을 다 돌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만보기 숫자를 보고 실소가 나왔습니다. 2만 보. 꽃구경이 등산이 됐습니다. 5월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장미축제가 열립니다. 그중에서도 삼척 장미공원, 곡성 세계장미축제, 에버랜드 로즈가든은 규모와 성격이 뚜렷하게 달라서,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제 경험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첫 번째. 삼척·곡성·에버랜드, 세 축제의 팩트부터
삼척 장미공원은 오십천변을 따라 조성된 단지로, 222종 약 16만 그루의 장미가 식재되어 있습니다. 단일 장미원 기준으로 세계 최대 식재 수량을 내세우는 곳입니다. 여기서 '식재 수량'이란 심어진 장미 그루 수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품종 다양성이나 공간 연출과는 별개의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얼마나 많이 심었느냐'의 싸움에서는 삼척이 압도적입니다.
곡성 세계장미축제는 전남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열리며, 전 세계 1,000여 종의 장미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축제가 특별한 이유는 '품종 다양성(cultivar diversity)' 때문입니다. 품종 다양성이란 같은 장미라도 꽃잎 수, 향, 색, 개화 시기가 다른 품종이 얼마나 풍부하게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유럽에서 수입된 명품 장미 품종을 국내에서 한자리에 볼 수 있는 것은 곡성이 유일합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세계 수준의 장미 전문 축제로 인정받고 있으며, 올해는 5월 17일부터 26일까지 10일간 운영됩니다.
에버랜드 로즈가든은 1985년 국내 최초의 꽃 축제로 시작했습니다. 장미원 미로원, 비너스원, 빅토리아원 등 테마별로 구분된 구역에 약 100만 송이의 장미가 피어납니다. 에버랜드가 직접 개발한 자체 품종인 '에버로즈'도 이곳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세 곳의 핵심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삼척 장미공원: 222종 16만 그루, 야간 조명 운영, 오십천 강변 평지 코스, 무료입장
- 곡성 세계장미축제: 1,000여 종, 증기기관차 탑승 가능, 미디어 파사드 야간 행사, 성인 5,000원
- 에버랜드 로즈가든: 테마별 장미원 구성,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필요, 퍼레이드 연계 운영
국내 꽃 관광 트렌드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5월 장미 축제 방문객은 봄꽃 시즌 전체 관광객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두 번째. 직접 걸어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삼척은 평지라 걷기 편하다는 게 최대 장점인데, 제가 직접 걸어보니 그 편함이 2시간쯤 지나면 오히려 단점으로 바뀌었습니다. 조경이 직선 위주로 설계된 이른바 '선형 동선(linear pathway)' 구조라 처음엔 시원하게 펼쳐진 장미밭이 압도적으로 느껴지다가, 나중엔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면서 살짝 지루해지는 구간이 생깁니다. 선형 동선이란 입구에서 출구까지 직선 또는 일직선에 가까운 경로로 관람하는 구조를 말하는데, 회유형(순환형) 동선과 달리 변화감이 덜하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그늘막도 거의 없어서 양산을 안 챙겨갔으면 정말 낭패였을 겁니다. 그래도 밤에 조명이 켜지고 강물에 장미 빛이 비칠 때는 낮의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장면 하나 때문에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곡성은 들어가는 주차장부터 진을 다 뺐습니다. 주말에는 주차 공간을 찾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고, 장미 터널 앞 인기 포토 스폿에서는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줄을 서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파가 많다'는 말은 그냥 넘기기 쉬운데, 제 경험상 곡성 주말은 '사람 구경하러 간 건지 장미 구경하러 간 건지' 헷갈릴 수준입니다. 다만 증기기관차 소리가 울리면서 장미 터널을 지나는 순간만큼은 곡성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련한 감성이 있었습니다. 먹거리는 축제장 내부보다 미리 준비해 가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저는 샌드위치를 싸 가서 벤치에서 먹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습니다.
에버랜드는 '자본의 조경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게 해주는 곳입니다. 장미 상태가 세 곳 중 가장 싱싱하고 화려했고, 어디서 찍어도 포토 스폿 수준의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장미만 보러 갔다면 가성비 측면에서 솔직히 의문이 들었습니다. 에버랜드 자유이용권 없이 장미원만 따로 입장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꽃 감상이 주목적이라면 비용 대비 효용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놀이기구 대기 인파와 꽃구경 인파가 섞이면서 피로도가 꽤 높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장미 분수 앞 벤치에 잠깐 앉았을 때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 순간 하나로 충분하다면 갈 만합니다.
한국조경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장미 품종 구성과 동선 설계 방식이 방문객 만족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출처: 한국조경학회).
세 곳을 직접 다 돌아본 뒤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진보다 '경험'이 목적이라면 곡성, 순수하게 장미 양에 압도되고 싶다면 삼척, 편의시설과 꽃을 같이 원한다면 에버랜드가 맞습니다. 방문 전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편한 신발과 물, 그리고 주차 계획입니다. 특히 곡성과 에버랜드는 주말 오전 일찍 가거나 셔틀버스를 적극 활용하는 쪽이 체력을 아끼는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5월은 짧습니다. 원하는 곳을 미리 정해두고 날짜에 맞춰 움직이시기 바랍니다.